[불교공뉴스-문화]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빗줄기가 도량 창문을 두드렸다.
‘왜 나를 부르시는고?’
창문을 활짝 열고 비를 맞이했다.

 

절 입구에는 이미 노란 은행잎이 양탄자처럼 깔려있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얼굴 위로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아, 어제까지 겨우 매달려있던 붉은 단풍잎이 담장 아래 소복하게 떨어져 바짝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니, 마음에 한기가 깊이 들어찬다.
비를 이렇게 뜻 깊게 마중하다니…… 이젠 자연을 보고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느끼는 것을 보면 나이를 먹은 건 확실하다. 속가의 나이로 벌써 오십 중반이 되었다. 오래전 아버지 스님이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하신 말씀이 입안에서 되새김질 된다.
‘자연을 보면, 이세 상에 태어나 살고, 어떻게 떠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구나! 자연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환하게 보여주고 있단다.’
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간혹 한마디 하시면 뜻이 어찌나 깊었던 지. 지금의 나 또한 아버지 스님처럼 떨어진 낙엽을 보며 인생을 관조하고 있다. 가슴이 먹먹해져온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갑자기 쓰러지셨고, 손쓸 겨를도 없이 열반하시고 말았다. 속가 나이로 오십 오세였다.

 

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그 때 처음 들었다.
일곱 남매는 올망졸망 커가고 있었다. 내 위로 큰 누이 셋, 형 그리고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나 있었으니, 어머니의 책임이 막중해졌던 것이다. 갑자기 아버지 스님이 열반하시고, 어머니가 출가를 하시겠다고 했을 때 나는 도무지 인생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어 방황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스님 한분도 모자라 어머니까지 출가를 하시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가르쳐야할 자식들 때문이라도 자신이 절을 지켜야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참으로 현명하신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마음의 도량이 퍽이나 넓으셨던 분이셨다.
비가 잦아들 줄 모르고 주룩주룩 내린다. 출가를 하고 어머니가 처음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시던 그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하다. 
<혜철스님 자전 에세이 『하늘나비』는 2012년 봄날 출간예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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