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불교]나는 심우도, 또는 십우도(十牛圖)에 대한 그림을 떠올리며, 내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수행자는 심우도를 평생 그려가며 수행을 쌓기도 하고, 어떤 도량은 대웅전 벽화에 심우도를 그려 넣음으로 해서 도량의 깊이를 더해가기도 한다.
출가를 결심하고, 프린스를 뽑아 타고, 승주읍 조계산 선암사로 들어갔던 때가 1990년대 초였다. 마치 동자승이 소를 타고 가던 심우도 첫 장면과도 같았으리라. 그런데 선암사 원주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 차를 타고 되돌아가던지. 속가에 돌려주던지 해라.”
아치 싶었다. 나는 깊은 산중이고, 더구나 몸이 몹시 아팠기 때문에 혹여 위급할 때를 대비해서 차를 몰고 갔던 것이다.
아차 할 사이에 프린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프린스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동자승이 타고 온 소도 사라지고 없었다. 소의 발자국을 따라 꾸준히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생활하기 시작했지만, 잃어버린 소의 행방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부처님께서 가신 그 길의 의미를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출가를 결심하기 전, 일 년이나 넘게 무슨 병인지 알 수없는 병을 앓았는데, 선암사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서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소의 꼬리를 발견하고는, 냅다 소를 잡아 틀어쥐어 코뚜레를 뀌었다. 그리고 그 소를 끌어다 길을 들이기 시작했다. 점점 부처님의 말씀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말씀으로~ 말씀으로’
날마다 그분의 말씀이 나를 깨우쳐 나갔다. 코뚜레를 낀 소 또한 점점 흰 소가 되어갔다. 붙잡혀온 소도 부처님 말씀으로 삼독의 때를 지우고 있는 듯 했다. 물론 반은 검정 소, 반은 흰 소였기에 잠도 오지 않고 속가에 두고 온 아이들 생각도 나고, 부처님 앞에 무릎 꿇고 목탁을 두드리고 있을 어머니 생각도 간절했다. 결국 나는 부처님 뜻을 다 받들지 못하고 속가로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냥 돌아갔던 게 아니고, 반은 검은 소, 반은 흰 소였다. 당시 절 마당에 장마로 쓸려온 흙무더기를 치우기 위해 수행자들이 질통을 어깨에 메고 일을 했는데, 나는 갑자기 일을 해서 그런지 탈 항이 되어버려 흙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며칠 있으면, 정식으로 법명도 받고, 의식을 치룰 예정이었다. 그런데 병원으로 실려가 수술을 받는 변고가 생겨, 속세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뿔싸! 고향에 돌아오니 소는 없고, 초라한 행자승만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도, 나도 서로를 잃어버릴 처지에 놓였다.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지만 얻은 것이 하나도 없는 처지였다. 그 뒤로 어렵사리 다시 불교대학에 입학해 수계를 받았지만, 심우도를 바라볼 때마다 힘들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가슴 속에 가라앉아 있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수행자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심우도는 나에게는 그토록 특별했다.
잃어버린 소를 찾아서, 그 소의 발자국을 보고 , 그 소 자체를 보고, 소를 붙잡고, 소를 길들이고,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집에 와서 소를 잊고, 소도 사람도 함께 잊고,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이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있고,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과, 목동이 포대화상과 마주한 모습 모두가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의미한다는데……
선암사에서의 수행자로써 다 마치지 못함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심우도의 심오한 뜻을 가슴 깊이 되새기던 한 때였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렇다고 지금에서의 내 모습이 그때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겠는가.
산다는 것은, 빈 하늘에 큰 원 하나를 그려 놓고 저 홀로 쳐다보고 있는 형국이지 않던가. 그래서 공이라고, 비어있다고 한다지 않던가. 
 <혜철스님 자전 에세이 『하늘나비』는 2012년 봄날 출간예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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