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서울시] 딜쿠샤의 일제강점기 당시 모습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들
딜쿠샤 내부 사진앨범은 메리 테일러가 1923년부터 딜쿠샤에 거주할 당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며 거실, 침실, 주방, 서재 등 당시 가옥의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테일러 부부가 사용한 가구, 장신구 등 당시 생활의 모습이 사진 속에 드러나 있다.
이 밖에도 가옥의 영역을 표시한 도면 및 강서방(Kang Subang), 남도(Namdoo) 등 딜쿠샤에서 집안일을 돕던 사람들의 행방이 기록된 서류, 딜쿠샤 임대에 관한 편지 등이 있어 향후 딜쿠샤를 복원하고 가옥의 연혁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딜쿠샤
서울 종로구 사직2길 17(행촌동 1-16번지)에 위치한 딜쿠샤는 서양식 가옥으로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 또는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라는 의미이다. 1923년에 준공되었으며, 앨버트 테일러는 1942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다. 딜쿠샤는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복층 구조로 전형적인 서양식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거실, 응접실, 서재, 드레스 룸, 식품 저장실, 하인들의 방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어두운 오크색 목재로 만들었고, 2층에는 메리의 화실이 있었으며, 꼭대기의 작은 방에는 한국에서 수집한 예술품들을 진열했다. 1층 거실의 너비는 14m에 달했는데 2층의 응접실과 함께 서울 시내의 풍경, 건너편의 안산 그리고 멀리 남산과 한강이 보였다.

앨버트 테일러의 코리아 골드러쉬(Korea GoldRush)
앨버트 테일러가 한국에서 금광채굴과 관련하여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음첨골』과 관련된 것들이다.
1930년대 앨버트 테일러는 강원도 세포군 삼방리(광복 전 함경남도 안변군)에 위치한『음첨골(EUM CHUM KHOL)』에서 금광을 경영하였다.『음첨골』사진앨범에는 그 일대의 모습 및 금광시설, 금 채취 과정 등 금광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담겨져 있다.
또한, 메리 테일러는『음첨골』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 사금채취 및 가공 과정을 그림으로 남겨 그의 저서『호박목걸이(Chain of Amber)』삽화로 사용하였다.『음첨골』에 관한 자료는 1930년대 우리나라 금 채취 및 재처리, 그곳 거주민들의 생활상 등을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금광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할 수 있다.

앨버트 테일러, 양화진에 잠들다.
『조위사(弔慰辭)』는 1948년 앨버트 테일러 사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안장되기 전 그와 친분이 있었던 ‘조선주택영단’(현 LH공사의 전신)이사장 김용우(1912~1985, 2대 국회의원, 6대 국방부장관 역임)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글로 조선 금광 개발 공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조위사』내용 사진4 참조)

 메리 테일러와『호박목걸이(Chain of Amber)』그리고 그녀의 그림
메리 테일러가 지은『호박목걸이(Chain of Amber)』는 1917년부터 1942년까지 테일러 부부가 딜쿠샤에서 서울살이를 한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한 자서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호박목걸이’는 리투아니아 산으로 메리 테일러가 앨버트 테일러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것이다. 책의 모든 내용은 호박목걸이를 통해 이야기가 되고 있으므로 상징성이 매우 큰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테일러 가문에서도 귀한 보물로 취급되었다.
또한『호박목걸이』의 초고가 있는데,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녀가 직접 타자를 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초고에는 당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모습, 민속신앙, 금강산 유람 등을 보며 느낀 생각 및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언더우드(Underwood)가문 등 그녀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메리 테일러는 그림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많은 회화 작품을 남겼다. 테일러 부부의 집안 일을 담당했던 김주사(Kim ChuSa), 최서방(Choi Sabang), 모모(MoMo) 등을 포함하여 여러 명의 한국인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있다. 이 밖에도 ‘한강의 모습’을 그린 수채화, ‘물동이를 머리에 얹은 여인’ 등의 작품이 있다.

※ 김주사(Kim chu sa)
김주사는 테일러 부부의 집안일과 사업을 도와주던 사람으로 테일러 부부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당시 식민지 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호박목걸이』에는 “과거 개화파 인사였으며, 영어에 능숙하여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파견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실제 보빙사 명단에 ‘김씨’ 성을 가진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1942년 테일러 부부가 미국으로 추방된 후 종로경찰서에서 고문을 받고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체포되기 전 천장에 태극기를 숨겨놓았다고 한다.

조이스 핍스 테일러의 서울생활을 담은 앨범
브루스 테일러의 아내 조이스 핍스 테일러(기증자 제니퍼 테일러의 어머니)는 영국인으로 정동에 있는 주한 영국대사관 총영사를 지낸 제럴드 핍스의 딸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1935~38년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생활하였다. 그 기간 동안 주한 영국대사관 주변 모습 및 청계천의 빨래하는 아낙네들 모습, 창경원(창경궁)의 벚꽃놀이 등 서울의 각 지역을 촬영한 사진들이 포함되어있는데, 이것이 앨범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호박목걸이』에서 소개되는 공예품
제니퍼 테일러가 기증한 자료 가운데에는 테일러 가문에서 사용했던 은 공예품이 상당수 있으며, 딜쿠샤에서 거주할 때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연호(중국 코담배(무연담배)를 넣어두는 작은 단지), 자기, 도서 등이 있다. 또한 메리 테일러가 입었던 한복이나 기모노(일본 여성전통의상), 치파오(중국 여성전통의상) 등 각종 의류도 포함되어 있다.

 딜쿠샤 자료, 일제강점기 서울의 모습을 그리는데 중요한 역할 것으로 기대
딜쿠샤 앨범은 1923년부터 1942년까지 테일러 부부가 딜쿠샤에 거주할 때 그곳을 촬영한 사진앨범으로,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하는데 도움이 되며,『음첨골』및『조위사』는 앨버트 테일러의 금광산업에 대한 발자취를 추적할 수 있다.

또한 메리 테일러의『호박목걸이』초고와 회화작품 그리고 여러 공예품들은 메리 테일러의 일생과 함께 일제강점기 서울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밖에도 조이스 핍스 테일러의 주한 영국대사관을 포함하여 서울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1930년대) 등은 당시 시대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제니퍼 테일러가 기증한 자료는 일제강점기 딜쿠샤에 거주하였던 테일러 부부의 행적을 밝히고,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제강점기 서울에 거주한 서양인 관련 자료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3대에 걸친 테일러 가문의 자료들은 딜쿠샤, 금광개발 등 한국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제니퍼 L. 테일러는 “이번 자료는 테일러 가문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를 연구·발전시키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고, 향후 딜쿠샤 복원 및 서울역사박물관 딜쿠샤 기획전시에 활용되어 시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송인호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제니퍼 L. 테일러가 기증하는 자료들은 3.1운동은 물론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서양인들의 한반도 금광개발, 서울생활 등에 관한 연구 자료로써 가치가 높다”고 하며 “제니퍼 테일러가 기증한 자료들에 대해 2017년 연구 등 정리 작업을 거쳐 2018년에는 기획전시를 개최할 계획이며, 2019년 딜쿠샤 복원이 이루어지면 기증된 자료를 가옥 내부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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