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소설의 주인공

이름 모를 수많은 책들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붙이고 만들어서 큰 새 모양으로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좋겠다 눈이 너무 많은 북쪽 백야의 어느 계곡에 앉아 잠시 숨어도 보고 갠지스 강 길고 긴 강줄기를 따라 슬픔에 젖어도 보고 킬리만자로 표범의 품에 안겨 드넓은 평야를 한없이 달려보고 싶다 푸른 밤에 홀로 우는 처량한 신세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백조의 날개를 하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겨울 철새처럼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에게도 사랑은 소설이다

  빨간 소독약

 가만히 두면 말라가는 빨래처럼
우리의 상처도 바람에 맡겨두고
몸이 가는 것이 아닌
마음의 여행을 떠났으면
한적한 산에 멋있게 자라나는
나무처럼 잔설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넓은 하늘을 지탱하며
서 있는 풍채를 닮아가며
천년은 족히 견뎌낼 위엄을 가지고

껍질을 벗겨보면 아무것도 없는
포장지 속의 빈 상자처럼
당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빈 수레인 것을
이제 그만 수레바퀴를 멈추고
요란한 소리도 멈추고
느티나무 그늘 아래 쉬었으면
상처에 빨간 약이 마를 때까지

  강릉 푸른 바다

 가로등 없는 거리
땅거미들이 내려와
말없는 파티를 열고
소나무도 잠이 들려는
늦은 시간

밤꽃 향기
진주보다 달콤하다
고통을 견디게 하는
양귀비꽃 몰래 피고

한밤의 라디오
이국적인 음성의 아나운서가
장마가 두고 간 더위를
이야기한다

경포대의 밤은
커피 향기에 식을 줄 모르고
자전거 마차에 몸을 싣고
해변으로 달린다 

 

 

<약력> 이태진
1972년 경상북도 성주 출생으로 2007년 계간 『문학사랑』으로 등단하여 시집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공저 『인생의 받침돌이 되어줄 UCC 마음사전 2g』. 〈제 11회 대전예술신인상〉, 〈제 42회 인터넷문학상〉을 수상. 무대조명 디자이너, 공연 공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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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 이 태진(Leetaejin)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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