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인천시] 고려왕조가 무신집정기에 접어든 직후인 13세기 초,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몽골[蒙古]의 출현으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몽골군의 계속된 침공으로 고려는 1232년(고종 19) 개경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는데, 개경으로 다시 환도하기까지 39년간의 ‘강도시대(江都時代)’를 열게 되었다.

강도시대에는 팔만대장경 간행을 통한 정신력의 결집으로 외적을 물리치고자 했는데, 팔만대장경 간행 직전인 1234년(고종 21)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을 펴낸 바 있다. 상정고금예문은 고려 인종 때 최윤의(崔允儀) 등 17명이 왕명으로 고금의 예의를 수집⋅고증하여 50권으로 엮은 전례서(典禮書)이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강화도 천도 후 최이(崔怡)의 주도 아래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28부를 인쇄했다는 사실이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최이가 진양후로 책봉된 1234년과 이규보가 숨진 1241년 사이에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직지심체요절』보다 130년이나 앞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최이가 직접 쓴 글에 따르면, 강도시대인 1239년(고종 26) 『상정고금예문』외에 또 다른 책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사실이 있는데, 책의 정확한 이름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다. 실제로 이 책은 보물 제758호로 지정되어 현재 목판본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당시 금속활자본이었던 것을 다시 목판본으로 만들어 인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39년은 고려 왕조가 강화도에 천도한 지 7년이 지난 시점으로 천도 직후의 어수선한 상황을 감안하면 금속활자 제작과 인쇄는 강화도 천도(遷都) 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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