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화관花冠
당신, 가신 뒤 첫 번째 맞는 어버이 날이에요
아이들 앞세워 찾아간 산소에는
가슴에 꽂아드린 카네이션 보며
보내던 달큰한 미소가 꽃잔디로 환했어요

부자父子가 나란히 찾아와
어머니 머리에 화관을 만들었는가 봐요
마지막까지
아버지 조석을 걱정하던
당신이 쓰던 세간마다
육십 줄에 가까운
큰아들 몫이 되었고
글문조차 깨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나다라와
1,2,3,4를 배우고 있지요

그렇게 엄마가 떠난 후
덩그마니 아버지 혼자 남은
큰집엔
당신의 기억을 하나씩 꿰어가고 있는
쓸쓸한
부자父子가 살고 있지요

임종

어머니가 떠나던 날부터
굽은 등을 뚫고 썩어 들어가던 수포들이
짝을 잃은 슬픔의 증표였던가요
못미덥던 아버지 남기시고 어머니가 훌훌 떠나신 후
홀로 남은 당신 보듬어 들여야지, 다짐했지만
일년에 서너 번 걸음한 것으로
밥 한번 같이 먹는 것으로
당신의 외로움을 모두 거둬낸 양
몹쓸 호기를 부리지 않았던가요

이승과의 인연을 그렇게 맥없이
끊고 계셨던 그 시각
막내딸은 호프집에 앉아
사는 일 퍽퍽하다며
사는 것 별 것 아니라고
가시 돋친 말들을 거침없이 토해내던 목구멍으로
철철 넘치는 생맥주를 넘기고 있었지요

돌아가는 길 어귀에서
“할 수 없어야, 잘하고 살어” 란 말씀 남겨놓고
마흔이 넘어 낳은 늦둥이 막내딸
세상에 떼어놓고
뭘 잘해야 하는지
뭐가 할 수 없으신지
자상히 설명해 주고 가셔야지요

자식들 앞에서
마음대로 눈물 한번 흘리지 못했던
큰소리 한번 내지 않았던
당신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요

어머니 손 놓칠까
같은 여름으로 떠나신 아버지
이왕이면 저도 여름에 돌아가
첫사랑,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겠습니다

 

잎꽂이

똑,똑,
다육이 잎 하나씩 따
햇살 바른 창가에
잎꽂이를 한다

삼십육 일, 물 한 모금
마다하며
긴 시간 사투死鬪 끝
바싹 마른 마사토 위에
새 잎을 내리고

제 살점 모두 허물린 후
떠나는 모정母情

소소한 것들이
부려놓은 이름,
어․머․니

마음의 풍경

― 내 하나의 소중한 언니에게
12년 터울의 거리를 넘어
내 생의 어디쯤에는 늘 당신이 있었습니다.
아홉살 동생 초등학교 교실에
갱지*를 선물하여 우쭐하게 했고
열살 촌뜨기 소풍날엔
손수 옷을 만들어 입혔지요
낯선 객지에서 학교를 다닐 때
당신의 따뜻한 밥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아마도 내 인생에 버거움이 더 보태졌겠지요.

사는 일이 고비고비를 만날 때마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겠지요.
당신이 그토록 붙들고 믿는 예수도
원망했을 때도 있었겠지요
아무리 힘겨워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는
슬기를 보여준 당신은

늙은 어미를 둔 나의 또 다른 어미였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층층이 동생들 앞에서
자존심 하나로 살고 있는 당신이
허술하게 눈물을 보일 턱이 있습니까
겉으로 단단한 사람이
속으로 얼마나 무너지고 있는 줄
마흔이 훨씬 넘어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같은 어미 아비를 4년 사이
모두 하늘나라로 보내드리며
난 든든한 기둥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울었습니다.
언니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각오하세요
귀찮아 떼어놓고 싶어도

달라붙어 당신 곁에 머무를 작정입니다.
칼바람 매서운 한파의 통로 어디쯤
있게 되더라도
당신이 있어 견딜만 하겠지요,
나의 디모데*여….

* 갱지 : 시험지로 쓰던 재생지
* 디모데 : 바울 곁에 많은 사람들 중 가장 가까웠던 믿음의 사람.

 

 

<약력>
이영옥 시인은 196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1988년 오늘의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1993년《해동문학》으로 등단, 제6회 대전예술신인상, 제22회 대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날마다 날고 싶다』 『아직도 부르고 싶은 이름』 『당신의 등이 보인다』 『가끔 불법주차를 하고 싶다』 『길눈』 등이 있으며, 2015년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아 여섯 번째 시집 『알사탕』을 상재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학사랑협의회, 대전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문학잡지《문학사랑》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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