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날아라, 담쟁이

작은 벽 하나에 스며들어 담쟁이가 되었다
구름이 그림자를 가려주는 결전의 그날
흙에서 뿌리로 스며들어
거센 물줄기를 이겨낸다

수직의 힘이 담쟁이 잎을 내리치고
수평의 거센 힘마저 작은 벽을 공격할 때
벽은 담쟁이와 함께했다

긴 폭풍이 지나고 햇살 좋은 아침
벽에 새로운 잎들이 기대어 서고
균열되어 가는 벽을 담쟁이들이
막아주었다

어린 담쟁이가 벽에 기대어 숲을 이루었고
들풀들은 따라가지 못했다

벽을 향한 담쟁이의 소명(召命)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승리보다
위대하고 장엄하다

 

 

신라인 혜초

 고원의 밤이슬을 발에 두고
낙타와 함께 거닐던 여행자
종이를 베게 삼아
별을 헤아리며
주강을 따라 바다로 간다

묵언의 고된 수행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썩지 않을 바람의 사막
죽음을 건너 순례의 길을 열었다

‘실크로드와 돈황’의 이름으로
천이백 년의 시공을 건너
현실에 전시되다

  연분홍 치마

 둥근 공 하나를 가지고
열심인 것은
공에 대한 집착일까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심일까

큰 소를 고삐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익숙해진 습성일까
주인에 대한 복종일까

지극히 평범하고 여린 사람들의 사랑은
꽃을 즐기는 나비들처럼 아름답다

 그러지마, 제발

 햇빛 한 점 없는
어둡고 쓸쓸한 버려진 창고에
가끔 문을 열고
비밀과 더러운 것들만 채우는
금수(禽獸)도 바라는 게 하나 있다
창고에 꽃이 피기를

감옥을 가고 싶은 사람
주식, 부동산, 지갑은 비어 있다
과소비에만 신경 쓰는 자존심
관심 한 번 주지 않는 허름한 창고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바라고 바랄 뿐이지만
위험한 기회는
번개보다 못하다

  시시하지 않은 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우리의 삶은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할 일 많은 사람들에게 시집 한 권 선물 한다고 시인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하는 말
얼마나 긴 생각을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는 말
얼마나 많은 집중으로
삶을 이해하려 하는지 생각지도 않고 하는 말

오늘도 난 집중하려 한다
언제 또 잊힐지 모르니

 

 

깊고 깊은

샘이 마른
우물에
구름이 없듯이

목마른 사슴

늑대를
만나 도망갔다

 <약력> 이태진
1972년 경상북도 성주 출생으로 2007년 계간 『문학사랑』으로 등단하여 시집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공저 『인생의 받침돌이 되어줄 UCC 마음사전 2g』. 〈제 11회 대전예술신인상〉, 〈제 42회 인터넷문학상〉을 수상. 무대조명 디자이너, 공연 공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solosun@hanmail.net
facebook : 이 태진(Leetaejin)이태진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