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살살이 꽃
바람이 내지른 씨를
아무데서나 받은 것이다
들판으로 오솔길로 강변으로
내 작은 모퉁이까지
눈치 없이 찾아와
요요, 이쁜 것, 고운 것
사알살
가을 둔부를 탐하는 중이다

* 살살이꽃 : 코스모스의 우리말

 

길눈

한두 번은 갔다 왔을 법한 길,

지하로 뚫린 터널을 달려 속도위반 무인카메라 세 개쯤 지나 둥치 큰 가로수 고목을 안고 우회전 다리를 돌아 앞으로만 가면 되는 길이었던가, 헤매지 않으려고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다. 몇 번씩 확인하며 떠나도 곧잘 헤매고 도는 길 위의 망연자실. 세월의 더께를 더해도 진전 없는 길치다. 가끔은 묵인하고 사는 건 아닌가, 헛디딘 길 위의 이정표마저.

염치없다, 간간이 침묵으로부터 끌어내준 행복이.

화분갈이

음력 이월 초이틀
화분에 갇혀있는 흙을 파내려다
모종삽이 휘었다

그땐 몰랐다
거실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묵은 겨울
바람 시린 들녘을 건너
뿌리 내리며 견디느라
쟁여있는 자양분
모두 내어주고
더욱 단단히 박혀있다는 것을

뿌리가 벌고
둥치가 커져 가면
들고 나는 일
내 맘 아닌 것을

시간의 불협화음
지그시 누르며
틈을 내주고 싶었다

 

산길

어딘가에서
한번은 꼬옥
만날 것만 같아
급하게 찾아 나선
함께했던 길
두리번대다
머뭇대다
뒤돌아보다
언젠가는 지칠지 모를
제 속의 출렁거림을 뒤적이다
길을 잃었네

<약력>
이영옥 시인은 196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1988년 오늘의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1993년《해동문학》으로 등단, 제6회 대전예술신인상, 제22회 대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날마다 날고 싶다』 『아직도 부르고 싶은 이름』 『당신의 등이 보인다』 『가끔 불법주차를 하고 싶다』 『길눈』 등이 있으며, 2015년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아 여섯 번째 시집 『알사탕』을 상재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학사랑협의회, 대전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문학잡지《문학사랑》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