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아침부터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다. 설거지를 하다말고 급히 달려 나왔다. 친구의 목소리가 반갑지 않다. 잊을 만하면 전화를 걸어 나의 심기를 건드린다. 웃음 섞인 사투리로 ‘옥천댁’이라 놀려대는 친구는 신이 난 모양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세 번이나 놀려대듯 “옥천댁”을 불러대는 친구에게 기분이 상하려한다.

이곳으로 내려 온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가롭고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꿈꾸며 아이들과 지도를 펴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들은 지도 한가운데 위치한 옥천을 발견하고는 운명을 믿기라도 하듯 부푼 기대를 안고 내려왔다. 옥천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와 바로 연결되는 옥천읍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고 낮은 집들이 모여 있는 아담하고 정겨운 시골의 풍경이었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난 후, 들뜬 기분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택시에 올랐다. 기사님께 “옥천 시내 구경 좀 시켜주세요”라고 첫 마디를 건네자 말도 없이 피식 웃으신다. 느린 속도로 채 십 분도 되지않아 패스트푸드점이 있는 사거리를 지나쳤다. 그리고 택시는 조금 전 지나쳐 오던 길로 다시 가는 것이 아닌가! 어이없게도 우리의시내 구경은 단 십 분 만에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이럴 수가! 나와아이들은 집에 도착해 어안이 벙벙한 채 웃기만 했다.

그렇게 옥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십여 세대가 마당을 사이에두고 나뉘어 있는 포근한 연립주택이다. 앞으로 작은 산이 바라다보이고 뒤로 테니스 코트장이 풍경처럼 자리하고 있는 곳. 주택 옆에 지하수를 끌어 올린 공동수도가 있어 큰 빨래는 다들 이곳에 나와서 한다. 주황색 나일론 끈으로 만든 빨랫줄이 어릴 적 기억으로 정겨움을 준다. 그 햇살 위로 편안함과 따스함이 빨래와 함께 널린 것 같아 마음 안에 행복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이사 온 날 저녁, 우리 가족은 시루떡을 준비해 인사를 나누었다.젊은 사람들이 이런 것도 할 줄 아냐며 다들 반갑게 대해 주셨다.

며칠 뒤, 앞집에 사는 내 또래 여자가 “우리 큰 아이와 나이가 같네요. 앞으로 잘 지내요”라는 말과 함께 둥그런 접시에 담긴 김치전을 내민다. 노란 해바라기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순박한 웃음과 잘
어울렸다. 그땐 잠깐 들어와 보라고 말하지 못했던 어설픈 서울댁이었지만 그 후로 친구가 되어 그간의 고마움을 나누는 이웃으로지낸다.

그해 여름은 매우 분주하게 지냈다. 상추와 고추, 호박, 가지 등 제철에 농사지은 것을 누구랄 것도 없이 가져 다 주시는 통에 몸도 마음도 풍족했다. 그때만큼 많은 포도를 먹었던 때가 또 있을까싶다. 포도송이마다 알알이 맺히는 정은 추억으로 영글고 있었다.
시고 쓴 맛이 나는 음식을 먹어도 항상 그 뒷맛이 달달했던 것이 이제 생각해보니 이웃들의 손맛 때문이지 싶다.

매달 한 번씩 갖는 반상회 날이다. 새로운 이웃을 맞는 환영회자리로 마련된 이날은 좀처럼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수돗가 옆큰 가마솥에서는 삼계탕이 끓고, 전 부치는 소리와 배추, 상추 씻는 물소리까지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거들 것도없다고 하시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반장님께 수박을 준비하겠다고말씀드렸다가 되레 핀잔만 들었다. 농사를 지어 나눠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총총한 발걸음으로 앞서 가신다. 경우를 따지며 서울깍쟁이로 살았던 마음이 부끄러워 쑥스러운 웃음으로 답했다.
순간 행복감이 나를 스치며 지나간다.

가끔은 사생활이 노출되어 불편하기도 하다. 점심 모임에 갔던장소를 퇴근해 돌아온 남편은 물론, 앞 동 아주머니도 알고 계시는눈치다. 아마도 이곳에서 비밀은 포기해야 될 성싶다. 어디에 가든지 아는 사람 한둘은 꼭 만나게 되는 작은 동네에서 서로의 안부를물어보는 일은 드물다. 얼굴색만 보아도 알 수 있고, 또한 하루에도 여러 번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정이 든다는 말을 실감하고 보니 그 따듯한 습성이 어디에든 묻어 나온다. 처음에 불편했던 마음이 이제는 그런대로 편해졌다. 누구를 만나도 새롭게 설명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여러 해 친구도 잊고 지내온 내가 궁금했던지 몇 해 전부터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온다. 나는 일일이 대꾸하지 않고 시간 내서 한번 들르라고 말한다. 그래서 찾아 온 벗이 여럿이다. 나를 보자마
자 친구들의 첫마디는 한결같이 ‘옥천댁’이다. 눈가에 웃음을 흘리고 놀림 반 그리움 반의 말투로 턱을 요리조리 돌린다. 그러면 나는 반사적으로 “그래 나 옥천댁이야!”라고 옹골지게 대답하고는 시
골의 정스러움과 여유를 입안 그득 넣어준다. 시골 아줌마가 됐을줄 알았는데 지금도 여전하다는 친구들의 입바른 말이 어쩜 나를지탱해 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뿐인가. 사람 냄새가 난다며 부러
운 눈빛과 솔직한 마음까지 덤으로 안겨주는 그들이다.

친구들이 매년 다녀간다. 옥천댁도 볼 겸, 다녀간 뒤로 여운이 남아 다시 오게 된다고 덧붙인다. 그렇게 이야기해 주는 벗이 고맙다.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행복한 고민에 휩싸인다. 우리들은 작은둑길을 지나 옥천에서 맛좋기로 소문난 아귀찜을 입술이 뻘게지도록 먹으며 웃음보따리를 푼다. 오늘따라 서울로 돌아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부럽지 않다. 아마도 영원한 옥천댁으로 남아있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멀어져 가는 그림자 뒤로 그리움이 남겨진다.

<저자 소개> 김영미 서울출생, 문학박사, 수필가, 시인《2012 명작선 한국(韓國)을 빛낸 문인(文人)》(천우) 선정, 작가한국문인협회 회원, 옥천문인협회 감사, 대전대학교 외래교수
'정지용 시와 주체의식'(태학사, 2015) '2016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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