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마법의 시간

책은 광고를 봐야 하는 이유도 없다 보고 싶은 책은 이제 편하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시간을 알리는 기계 소리 잠재우고 책장 속 선인장이 꽃을 피우는 계절, 황금빛 햇살이 살고 있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지나 프로방스의 별들과 알프스 양떼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언어의 생명력은 어디서 시작하는지 문장의 힘은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 세상을 여행하고 싶은 일요일 깊은 밤에 때로는 말없이 펜의 역습을 꿈꾼다

많이 본 기사 1

 베란다 세탁기에 옷을 넣는다 세제를 넣고 식탁에 앉아 오늘 일정을 핸드폰으로 확인한다 새벽에 길 떠난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슬며시 집을 빠져나온다 상가의 간판이 요란 시끌벅적한 거리에 까만 선글라스는 매혹적이다 오후 2시 가방 속 술병을 꺼내어 지나가는 소년에게 건네준다 장난기 많은 아이가 술병을 들고 가다가 깨버린다 나이, 주소 불명의 숨겨진 비밀이 누군가의 손에 건네지면서 아뿔싸, 자신이 마신 술병 속에 마약을 숨기고 편지를 숨기고 권총을 숨기고 기억을 숨기고 립스틱 자국을 숨기고, 숨기고! 오후 2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많이 본 기사 2

 보일러 기름통에 바닥이 보일 때쯤 감기약 두 개를 집어 삼키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다 오후 3시 길은 조용한 십자가 햇빛마저 추워서 구름 뒤에 숨어버린 암흑의 도로 위에 쇳덩이가 불을 뿜고 소리를 지르며 삽시간에 정지한다 빨간 신호 빨간 흔적 흰 줄 사이에 누워버린 노인 식어버린 엔진의 절정을 아쉬워하는 젊은 남녀 가죽의 핸들을 만지고 보석의 가방을 만지고 맨살의 가슴을 만지고 돌이킬 수 없는 키스에 눈을 감았구나! 처절하게 괴로울 때 어느 노인의 주검을 생각해보렴 욕망의 노예여 속절없는 에로스여 지옥의 하수인이여!

멈춘 기차

나날이 병들어가는
전쟁터 같은 황야에서도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약속은 없다

마지막 기차 시간이 지나고
텅 빈 안내판을 바라보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공중전화를 찾고
지갑 속 동전을 찾고
동그랗게 시간이 지나면

대전역은 슬며시 잠이 들고
정하지 못한 약속을 보내고
도시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약력> 이태진
1972년 경상북도 성주 출생으로 2007년 계간 『문학사랑』으로 등단하여 시집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공저 『인생의 받침돌이 되어줄 UCC 마음사전 2g』. 〈제 11회 대전예술신인상〉, 〈제 42회 인터넷문학상〉을 수상. 무대조명 디자이너, 공연 공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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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 이 태진(Leetaejin)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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