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꽃누르미

보장받지 못한
생의 두려움이었을까

내 몸 곳곳은
황홀한 색으로 빛났다
살아있음과 없음의 아슬한 경계에서
저장된 숨통들이 흐늘거렸다

까내린 햇살 너머
가볍게, 가볍게
제 무게를 내리고
건너야 만나는 열반涅槃의 강

* 꽃누르미, 압화(壓花) : 꽃의 수분을 제거하여 만든 꽃 예술.

 

입춘 무렵

칩거에 들었던 것들이
들썩들썩 틈새를 늘이기 시작했다

틈새를 벼르고
언 물이 녹아들고
가랑이 사이로
첫물 같은 뜨거운 기운이
파란 희망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옥죄어 오던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소멸하지 않는 신화의 간이역

고요를 들어 엎은
그 침묵의 가운데로 들어서고 싶다

어디쯤일까

기차소리가 들려요

소리 나는 곳 야산을 뛰어올라 하나 둘 기차 칸수를 세며 손 흔들어 줄 사이도 없이 덩그러니 납작 엎드린 두 갈래 길만 남기고 달아나 버리는 꼬리를 바라보기만 했지요 다랭이밭에서 허리 한번 곧추세우지 못하고 엉덩이 질질 끌며 풀을 메던 엄마는 ‘너무 멀리 가지 마라’ 했지만 나는 기차를 타고 싶었어요 엄마 꽁지를 따라다니며 보이는 그림처럼 박혀있는 시골집들도 산중턱 드문드문 올라온 봉분들 끝없이 열린 들판도 골목골목 눌러앉은 분냄새 나는 짐승들의 우리도 아닌, 가다가다 기차소리가 끝나는 곳 어디쯤일까 떠나고 싶었어요 논산훈련소로 향하는 입영열차라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도

가끔씩 소리가 들려요

외줄타기

영원한 자유의 길에 들고자
가는 길이 있어
여름내 파랗던 목숨들은
지나는 발자국 소리로 긴 잠을 재우고
산죽 몇 잎 들고 일어나
잠들지 않은 청청한 손을 내밀었지

하필, 콧등 시린 이 추운 날
문득 올려다본 해인사의 하늘에
참나무 가지 끝,
누가 탯줄을 놓았을까

출가의 길에 든 행자처럼
해인사 독경소리에 번뇌를 묻고
아스라이 매달린 겨우살이*

지루하리만큼 황폐한 세상을 향해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촉수를 세워
부처님의 진신眞身사리가
참나무 가지 끝에 똬리를 틀었을까

불경도 아닌 것이
성경도 아닌 것이
단지, 외줄로 연명한 목숨 하나가
일주문에 들고 있다

* 겨우살이 : 늘푸른 떨기나무로 황록색 줄기와 잎으로 Y자를 만들며 새둥지 같이 둥근 모양을 만든다.

<약력>
이영옥 시인은 196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1988년 오늘의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1993년《해동문학》으로 등단, 제6회 대전예술신인상, 제22회 대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날마다 날고 싶다』 『아직도 부르고 싶은 이름』 『당신의 등이 보인다』 『가끔 불법주차를 하고 싶다』 『길눈』 등이 있으며, 2015년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아 여섯 번째 시집 『알사탕』을 상재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학사랑협의회, 대전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문학잡지《문학사랑》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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