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

좋아해,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비오는 거리에서
무작정 기다렸었지
동성로, 서점이 하나 있고
은행, 패션의 거리, 도시의 중심에서
작은 인형을 선물하고 싶었어

한두 번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연히
길을 가다 인사하고
한동안 못 만나다
하룻밤을 함께하고
돌아오는 그 집 앞
그 이후로
만날 수 없는 사람

사라지지 않는 포옹의 습관처럼
추억 속의 그 사람
말없이 내 안에 남아서
잊으려 할수록
회상의 꽃을 피우네


 

달만큼 큰 미소의 그녀

 달이 지는 바위틈 사이
비단잉어 한 마리 살고 있다
가끔 손을 넣어 만져보려 하면
유유히 몸을 흔들며
하얀 살을 보여주기만 하는
너무 커져버린 몸을 가진 너
처음에는 작았을 몸을
반쯤 보여주고
물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누구나 한번쯤
비단잉어를 보고는
잡으려 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넣어서
못살게 굴기도 하겠지

달이 지면 슬그머니
먼 곳의 구름을 보고
수면에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겠지

바위틈 아래
어떠한 사랑도
간직하지 말고

아름답게
살고 있어라

숨소리를 기억해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이 녀석은
상대할 것이 못 된다
좀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고
뾰족한 끝으로
드르륵드르륵
붉은 냄새, 씻겨 나오는 가루들

약해질수록
주체하지 못하고 끝을 봐야 하는
못된 녀석은 언제나 새로운 날을 세우고
요란한 소리로 씩씩거린다
비열한 녀석을 다루는 것은
무자비한 카인의 후예들

자꾸 뚫으려 하는 짓이
짐짓 운명인지 실수인지
구멍으로 삶을 빨려들게 만드는
숨통 하나 만들어버린 신의 작품

돌아오지 못할
육신의 기억만을 남긴 채
숨소리를 내려놓고 하늘로 떠나간다

 

슈즈를 타고

슈즈 광택을 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작은 발이 어색해 보여서일까
상실감에 대한 역설일까 생각해보다가
어느 순간, 광택은 계급과도 같다는 생각에
거리의 신발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신발은 언제나 두 개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사랑에 목마를수록 광택에 열광하였고
이별이 많을수록 상처투성이 슈즈는 조용히 잊혀 갔어

슬픔을 신발 끈에 묶어 두고
군중 속으로 묻히고 싶은 도시에서
구두약을 바르고 마른 헝겊으로
슥삭 슥삭 정성들여 문질러 광택을 내는 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반짝이는 슈즈를 타고
강물 위를 날아가고 싶은 꿈

 <약력> 이태진
1972년 경상북도 성주 출생으로 2007년 계간 『문학사랑』으로 등단하여 시집 『여기 내가 있는 곳에서』, 공저 『인생의 받침돌이 되어줄 UCC 마음사전 2g』. 〈제 11회 대전예술신인상〉, 〈제 42회 인터넷문학상〉을 수상. 무대조명 디자이너, 공연 공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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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 이 태진(Leetaejin)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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