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뾰루지

젖가슴에 뾰루지 하나 올랐다
폴리우레탄이 스칠 때마다
나일론이 건들 때마다
아픔이 살아난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렇지 않은 듯
감추고만 있으려 했는데
내 몸속 폐허의 들판에
아직도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어
하나의 꽃으로 살아났을까

난, 또
누구의
가슴에 박혀
뜻하지 않은 상처를
뿌리 내린 것은 아닌가

꽃비 내리고

자지러질 듯 터진 벚꽃 길을 걷는다
밤새 누구의 손길이 드나들었길래
마른 촉수마다
일제히 벙글었을까

어김없이
봄은 오고가고
꽃은 피었다 지고
까맣게 잊었을 사랑이
뒤를 밟는 소리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봄날 오후

기억할까,
콧잔등에 쏟아진 꽃비에 젖어
눈물을 보태던 사람,
한바탕
소통의 막힘에서 흔들렸던 우리,

기억하렴.
언제고 혼자가 아닌
함께 걷고 싶은 이 길을.

 

빈 소주병과 참치캔

상가商家 낮은 문턱에 걸터앉은
깨진 소주병과 비워진 참치캔

내던져진 생의 끄나풀 풀며
하필 시끌한 대흥동 먹자골목
어젯밤 잦은 비명을 끌고
주섬주섬
하루 반나절
여기까지 왔나보다

한 잔을 비우며
뻑뻑한 하루가 서러웠을까
두 잔을 비우며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었을까
세 잔 네 잔… 비우며
그 속에 옹크린
소멸되지 않은 오기도 보였을까

마지막 잔을 비우며
오지 말았어야 할 길
돌아갈 일 너무나 아뜩하여
오호라
깨뜨리고 싶었구나
모두.

 <약력>
이영옥 시인은 196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1988년 오늘의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1993년《해동문학》으로 등단, 제6회 대전예술신인상, 제22회 대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 『날마다 날고 싶다』 『아직도 부르고 싶은 이름』 『당신의 등이 보인다』 『가끔 불법주차를 하고 싶다』 『길눈』 등이 있으며, 2015년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수혜 받아 여섯 번째 시집 『알사탕』을 상재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학사랑협의회, 대전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문학잡지《문학사랑》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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