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서울시] ‘3‧1독립운동’을 며칠 앞두던 1919년 2월 27일. 시인이자「3‧1독립선언서」초안을 작성했던 육당 최남선 선생의 출판사인 신문관과 함께 당대 최대 인쇄사였던 보성사는 조용히 분주했다. 우리 민족의 결연한 독립의지가 천명된「3‧1독립선언서」원고가 인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관과 보성사 두 곳에서 21,000장이 인쇄돼 전국으로 배포된 것으로 알려진 「3‧1독립선언서」는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아 그 가치가 더욱 특별하다 할 수 있다.

서울시가「3‧1독립선언서」의 등록문화재 등록을 추진한다고 17일(수) 밝혔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보성사판’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 3일 등록문화재 등록 신청을 문화재청에 제출한 상태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되면「3‧1독립선언서」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첫 사례가 된다.
보성사판은 선언서 첫 줄에 ‘我鮮朝’ 이라는 표기의 오류가 있고 판형, 활자체도 달라 신문관에서 간행한 ‘신문관판’과 구분이 가능하다.
현재 보성사판 중에서 공개된 것은 독립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독립운동가 오세창 가(家), 박종화 가(家) 소장본 등 대략 5점 정도다.

등록문화재란 1876년 개항 이후~6‧25전쟁 전후 시기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아 등록, 관리하는 문화재로서 현재 총 666점이 등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시 소재 등록문화재는 서울 남대문로 한국전력공사 사옥, 창경궁 대온실, 백범 김구 유묵 등 총 171건이다.

시는 우리 민족이 전 세계를 향해 독립의 정당성과 결의를 표명했던 3‧1독립운동의 기본 선언서인「3‧1독립선언서」가 민족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인 만큼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 전문가 조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1차 심의→등록계획 공고→ 2차 심의를 거친 후 등록 문화재 등록이 최종 결정된다.

이에 앞서 광복 70주년이었던 ’15년, ‘3‧1운동 관련 독립선언서류(48점)’가 국가지정기록물 제12호(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43-46조, 동시행령 제80-84조에 근거)로 지정된 바 있으며, 그 중에는 3‧1독립선언서(보성사판, 신문사판)도 포함되어 있다.

서울시는「3‧1독립선언서」뿐만 아니라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선 백용성 스님의 <조선글화엄경>, <조선어능엄경>도 등록문화재 등록을 신청했다.

백용성 스님(1864~1940)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계를 대표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한문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불교의 대중화, 중생의 구제를 해결하고,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독립역량을 증대시키고자 했다. 1921년 3월에는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하여 불경의 우리말 번역과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각종 포교서의 저술에 착수했다.

용성 스님은 대중의 교화 지침으로서 불교의 생활화, 대중화, 지성화(知性化)를 주장했으며, 경전을 번역하고 발행함으로써 이를 실천했다. 이러한 역경사업은 삼장역회를 설립해 체계적으로 유통망의 조직을 활용하고, 단어의 변화와 대화체 번역 등을 통해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에 시는, 우리말과 글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던 일제강점기 시기에 민족독립의식의 고취는 물론, 불교경전의 현대화와 함께 후대 국역의 초석이 되었으며, 당시 한글의 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인 백용성 스님의 <조선글화엄경>과 <조선어능엄경>을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난 3일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했다.

서울시는 이밖에도 성북구 흥천사 소장 경판 및 불화 등 4건에 대해 ‘서울시 유형문화재‧문화재자료’로 지정 및 지정예고 한다고 17일(수)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며, 1395년(태조4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가 죽자 1396년 능지를 정릉(貞陵)에 정하고, 그 원당(願堂)으로 능 동쪽에 절을 세워 흥천사라 하였다. 흥천사에는 각종 불상과 불화, 경판 등 많은 수의 불교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중 지난달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한 4건이 문화재로 지정, 혹은 지정 예고된다.

서울시는 흥천사 소장유물 중, 일제강점기 시대 상황을 반영한 독창적인 구성의『감로도』를 등록문화재로 문화재청에 등록 신청하고, 1867년 경 서울 경기지역과 경상북도 화승들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현왕도』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19세기 불화의 특징을 보이는『약사불도』를 서울시 문화재자료로 지정 예고하며, 함허 득통이 주석한 간본으로 유일하게 현전하는『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판』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79호로 18일(목) 지정 고시한다.
감로도(甘露圖)는 지옥에 빠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영가천도(靈駕薦度) 의식에 사용하던 것으로, 1939년 보응문성(普應文性, 1867~1954)이 편수를 맡고 남산병문(南山炳文)이 출초(出草) 하였다. 독창적인 구성과 원근법, 명암법 등의 사용, 사실적 묘사, 채색기법 등에서 서양화적 요소를 반영하며, 19세기 중엽 이후 도식화된 감로도와 달리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도록 적용시켜 새로운 도상을 창출한 점이 돋보인다.

현왕도(現王圖)는 현왕(現王)이 여러 권속을 거느리고 저승에서 망자를 심판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1867년 흥천사의 아미타불도, 지장시왕도 등과 함께 일괄 조성된 작품이다. 양식적으로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경상북도 사불산파의 화승 신겸(愼謙)의 영향이 보이며, 도상적으로는 19세기 후반 경 서울, 경기도 및 경상북도 지역에서 유행한 현왕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당시 서울 경기지역과 경상북도 화승들 간의 교류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약사불도(藥師佛圖)는 약사여래와 권속들을 그린 것으로, 화기에 의하면 1847년 신흥사(흥천사의 옛 이름)에서 개최된 수월도장불사(水月道場佛事) 때 수봉법총(秀鳳法聰)을 수화승으로 하여 벽담도(碧譚道□), 대은창활(大隱暢濶), 양전(良田), 계(桂□)이 함께 그렸다. 가로로 긴 화면, 보살과 사천왕 등 권속들이 좌상으로 묘사된 점 등 19세기 불화의 특징을 보이며, 조성연대와 화원, 조성배경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어 조성 당시 흥천사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판(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板)은 전 3권 60판(2판 결판)으로, 함허당(涵虛堂) 기화(己和, 1376~1433)의 주석본이며, 왕실과 신도들의 지원으로 고종 19년(1882) 8월 감로사(甘露社)에서 간행한 목판이다. 이 경의 인본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으나 현전본은 드문 편이고, 우리나라 고승인 함허(涵虛) 득통(得通)이 주석한 간본 중에서 현전하는 경판으로는 유일하다.

이밖에도 서울시는 18세기 후반 경의 신중도로, 경상·전라지역에서 활약했던 평삼(平三), 쾌윤(快允) 등의 작풍을 보여주는『백상정사 신중도(神衆圖)』와, 태조부터 영조년간까지 궁중행사에 의령남씨 출신이 관련되어 이를 기념하는 그림과 기록을 묶은 5개의 화첩인 홍익대학교 소장『의령남씨가전화첩(宜寧南氏家傳畵帖)』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하며, 19세기 후반 도봉구 천축사에서 조성된 마애사리탑(磨崖舍利塔) 2기를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65호로 오는 18일 지정 고시한다.

특히,『의령남씨가전화첩』은 현재 남아있는 기록이나 자료가 많지 않은 조선전기 궁중행사의 사실적인 모습과 경복궁 근정전 등 당시 궁궐과 전각의 모습을 담고 있는 유물로서 그 가치가 크다.

강희은 서울시 역사문화재과장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우리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의식을 보여주는「3‧1독립선언서」를 비롯한, 문화재들의 가치를 시민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서울시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유물들을 꾸준히 발굴해 제도적으로 보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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