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뉴스-문화] 차의 속력이 몹시 떨어졌다. 하기야 급할 게 없었다. 차가 아무리 밀려도 신경이 날로 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조바심이 났다. 아, 사고라도 난 것이 아닐까. 중앙선 쪽으로 차를 몰았다. 하지만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 빗물이 고이고 있는 지 천정이 얼룩져 있다. 마치 내 몸에 피어난 커다란 점처럼 거뭇했다. 나는 젖가슴 아래에 검은 점이 있다.

어렸을 때는 동전 크기만 했는데 차츰 손바닥 크기 정도로 자랐다. 그 점은 늘 콤플렉스였다. 학창시절 얼룩송아지란 별명을 갖게 된 것도 모두 그 점 때문이었다. 그 놈의 점은 내 인생의 첫 얼룩인 셈이다. 한동안 검버섯처럼 피던 점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늙어 죽을 때까지 점이 자란다면 내 별명은 얼룩송아지가 아닌 젖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이 몹시 가렵다. 흉보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여섯 번째 터널을 통과하고, 일곱 번째 터널로 진입하려는 순간이었다. 경찰관들이 비상등을 켜고 주행을 가로 막았다. 뭔가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일단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어느새 차량들이 일 차선으로 갈 수 있게끔 가드레인을 쳐 놓았다.

붉은 비상등이 연신 껌벅였다. 앞서 가던 차량들도 일제히 속도를 줄였다. 몇 몇 경찰은 밀려드는 차량을 통제하느라 진땀을 뺐다. 교통사고라도 난 모양인가. 도로 위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라도 되는 것은 아닌가. 왼쪽 사이드 창을 내렸다. 도로 위에 날리던 차량 매연이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차량 통제를 하고 있던 경찰관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번쩍대는 비상 봉을 흔들고 서 있던 경찰관은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으며, 별일 아니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불안해졌다. 뭔가를 잊어버렸다는 느낌이 또다시 들기 시작했다. 서서히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뭔가가········. 그때였다. 칼날이 튕기며 내는 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위이잉, 위이잉·······.”
칼의 울음소리가 분명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던 그 소리였다. 보린의 화실에서 듣던 그 소리가 분명했다.

아, 내목대장의 칼의 울음소리였다. 왜 그 칼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일까?
차량들이 삼십 분이나 꼼짝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제 시간에 도착할지 의문이었다. 차를 버리고 빠져나가야 할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얼마 후, 천천히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겨우 일곱 번째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안도의 숨을 깊게 몰아쉬고 부드럽게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천성이 느렸다. 몸이 게으른 게 아니라, 무슨 일에 있어 선택이 느리다는 것이다. 그건 자타가 공인하고 남을 정도라서 굳이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몇 번인가 천성이 느린 탓에 곤혹스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에 회사 승진 명단에서 빠진 것도 모두 그 이유에서였다. 재빨리 김 상무에게 찾아가 얼마간의 금품을 또 상납했어야 했을까? 사실 그런 마음은 앞섰지만, 눈치만 보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말았다. 갈수록 젊은 동료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실과 득을 타지는 순발력 또한 턱없이 부족했다. 극약처방으로 마누라 백을 이용해 마지막으로 낙하산을 타볼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아내의 백만큼은 죽어도 싫었다.
올 봄에는 나보다 2년 늦게 입사한 박 대리가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 나름대로 뼈아픈 노력의 결과였을 것이다. 계산된 전략과 민첩한 행동으로 줄타기를 잘한 탓이었다. 그는 종종 비상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지난날의 나처럼 이익을 계산하는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불쌍한 자식, 꼴리는 대로 사는 게 제일 좋아.’
한마디 쓴말을 던져주고 싶었지만, 그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점점 살벌해지는 사무실 분위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마냥 무방비 상태로 지냈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여직원들이 ‘철지난 이월상품’이라는 닉네임까지 붙이며 수근 될까. 그렇다고 상사에게 금품을 바칠 마음은 없었다.
일곱 개의 터널을 지나 톨게이트를 빠져 나간 후, 일반 국도를 십여 분 타면 그곳에 아버지 집이 있었다. 일곱 개 터널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의 체취가 코끝에 감기는 이유도 그 집 때문일 것이다. 생전에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

‘여자를 너무 오래 사귀지 말라. 세월의 부피만큼 책임이 늘어나는 법이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당신이 너무 오랜 세월 어머니 몰래 한 여자를 가슴에 품고 살았던 탓에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랬다. 한평생 어머니가 아닌 딴 여자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암이 온몸을 점령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 년에 한 두 번씩 이러저러한 핑계를 둘러대고 중국을 다녀왔다. 어머니도 그 일 만큼은 막지 못했다. 오랜 세월 아버지의 가슴에 여자를 숨겨두어야 하는 고통 때문이었을까. 아버지는 위암 투병 생활을 몇 년 하더니, 결국 폐혈 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 가슴 속에 있던 그 여자 또한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 오래 함께 살다보면 속을 너무 훤히 보는 것 같다. 더는 불편해서 못살겠다.’
당신의 뱃속까지도 훤히 들여다보는 어머니를 몹시 두려워했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가슴에 숨겨놓은 여자를 파헤쳐 난도질을 한 이후부터였던가, 어머니는 더 이상 아버지와 한 이불을 덮지 않았다.
‘독종, 세상에서 제일 독종, 어쩜 인두겁을 쓰고 그 많은 세월 딴 년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고. 나쁜 사람········.’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잠시 정신이 들면 서운함을 쏟아냈다.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실로 사랑한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쪽이 등을 돌릴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바로 그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였을 것이다.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거나, 집안 행사 때마다 부부 동반으로 대문 밖을 나서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고, 어머니를 보고 있어도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앞산을 바라볼 때도, 마당에 핀 백일홍나무를 바라 볼 때도 두 분은 항상 같은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가끔씩 상처 입은 몸을 움켜쥐고 아버지 집으로 찾아들었다. 먼지가 뽀얗게 가라앉아 있는 아버지 방 한가운데 벌렁 드러누워 있으면 참 편안했다. 그러다보면 물기가 자박자박한 수면 속으로 깊이 빠져 들었다. 모든 게 캄캄했다. 오랫동안 잠에 빠져 있었다. 아침이 되면, 뼛속까지 시렸던 통증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또다시 어슬렁거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심하게 열병을 앓았다. 두 살 아래였던 수민을 가슴에 품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시큰둥한 태도였다. 나 혼자 짝사랑한 것이었다. 몇 날을 끙끙 앓다가 결국 자리보존하고 말았다. 누워 있는 동안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림 실력이 또래 아이들보다 낫기는 했지만 싹수가 보일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은 수민이 때문이었다. 수민이 화실 다니 것을 알고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콧대 높은 그녀의 뒤를 따라 다닌 끝에 결국 사랑을 받아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증명한 셈이었다.

“사내가 되어가지고 그림이 다 뭐냐!”
아버지의 눈빛은 싸늘했다.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한 내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평생을 두고 수민과 함께 하자면,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었다. 우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자고 굳게 맹세까지 했다. 그녀의 이모가 미국에 있었던 탓에 유학가기가 쉬웠던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 이유부터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날로 하얗게 빛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내목대장의 칼을 꺼내 닦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의 방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작은 항아리와 붓과 벼루 그리고 오랜 고서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아버지 방에는 벽장이 하나 있었는데 항상 그곳에 칼이 있었다. 칼 손잡이에는 새우 두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팔팔 뛰는 새우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는데, 양각기법이라서 손이 닿으면 도톨 거렸다. 칼을 빼어들어 종이를 베어 보면 그 소리가 섬뜩했다. 사실 칼을 자주 꺼내보지는 못했다. 어찌나 아버지가 애지중지 다루는지 벽장 근처도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어쩌다 아버지가 벽장문 잠그는 것을 잊고 출타하면 몰래 들어가 칼을 쭉 빼어들어 몸피를 훑어 봤다. 그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칼의 주인은 일본 메이지 시대의 내목대장(乃木代將)의 것이었다. 칼에 대한 족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어린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내목대장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장수였다. 그는 중국 여순 반도의 203 고지 전투에서 두 아들을 일선 소대장으로 참전시켰다. 전쟁은 승리했지만 결국 두 아들과 많은 부하들을 잃었다. 그 후, 그는 죄인처럼 살다가 천황의 서거 일에 맞춰 부인과 함께 할복 자결함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그런 탓에 내목대장은 일본인들의 가슴에 살아 있는 군신(軍神)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설명까지 했다. 어린 내가 그 뜻을 알 리 없었지만 말이다.

내목대장의 칼을 보면, 서늘한 한기가 온몸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끝, 비릿한 핏물의 흔적을 남겨야만 제 빛을 띤다는 칼이었다. 어쩌다가 아버지에게 내목대장의 칼이 흘러들어왔는지 궁금해 여쭤봤지만 쉽게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안에 그런 칼이 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면 일본 앞잡이라고 할 게 뻔 하니 가족 모두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그런데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내목대장의 칼이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급기야 아버지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불려가 여러 날 취조와 고문을 당하고 일주일 만에 풀려났다.

 

그 후, 오래도록 집안 분위가 흐렸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칼이었는데도, 칼의 행적을 묻는 사람들이 담장 밖을 서성거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차라리 그자들에게 칼을 줘버리라고 어머니를 소리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물러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칼을 지키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엔가, 어머니는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칼을 당장 내주라고 펑펑 울었다. 자식들은 지켜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안팎으로 집안 단속이나 잘 시키라며 버럭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내목대장 칼은 칼등에서 푸른빛이 돌았다. 손잡이에 새겨진 새우 두 마리는 지칠 줄 모르고 파닥거렸다. 그러다가 차츰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더 이상 집 밖을 서성거리던 사람들도 없었다.
아버지의 몸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던 날이었다. 아버지는 그 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늦은 밤, 아버지와 마주하고 앉았는데 몹시 긴장되었다. 아버지는 상자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이 칼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어. 이 칼은 사람과 다를 바 없어. 숨을 쉬는 명검이란다. 그래서 가문에 화를 불러올 수도 있지.”
“숨 쉬는 칼이라니요?”

나는 아버지의 눈과 칼의 코등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등짝에서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내 코끝에 칼날을 드미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칼의 냄새를 맡아봐라.”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키자, 아, 칼날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확 풍겨왔다. 역한 냄새는 아니었다. 오래 전, 병사의 가슴에서 솟구친 핏물이 스며든, 죽음의 냄새 일거라는 생각이 미쳤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리라고 했다.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그렇게도 반대하던 그림을 허락하다니 말이다. 두 눈에 눈물이 어렸다. 오랫동안 수민을 품었던 가슴이 짠하게 아파왔다.

“아버지! 제 나이가 몇 인데요. 너무 늦었어요. 사실 재능도 없고요.”
“네가 알아서 해라. 네가 그토록 하고 싶은 그림을 반대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염려하지 마세요. 아버지!”
“칼은 항상 눈을 조심해야한단다.”
“칼의 눈이라고요?”
“칼의 코등이 바로 아래에 눈이 있는데 격투를 할 때 그 눈을 조심하지 않으면 참패를 당하게 된단다. 이 칼은 집안에 숨겨 두겠다. 훗날, 칼이 너를 찾게 되면 그때 찾아라. 칼이 새 주인을 찾을 때는 울음소리를 내는구나.”
“칼이 울어요?”
“그렇단다. 내 목숨이 다하는 순간, 칼이 새 주인을 찾는 울음소리를 낼 거야. 나도 만주에서 그랬으니깐 말이야.”

 

내목대장의 칼집에는 족보가 함께 있었다. 일본어로 쓰여 있었다. 그 검이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와 검이 공을 세웠던 전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후, 집에서 칼을 볼 수가 없었다. 몸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암 덩어리를 떼어낸다고 야단법석이다가, 그만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세 번째 항암치료를 받기도 전, 조용히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집안 어딘가에 숨겨 놓았는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넘겼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목대장의 칼은 조용했다.
아, 수민이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아버지가 그토록 아꼈던 내목대장의 칼이 내 기억에서 감쪽같이 지워졌던 것처럼 수민이라는 이름 또한 모두 잊고 지냈다. 아니 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 덕분인지 지금은 오래전 코흘리개 적 풋풋한 사랑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나의 청년기는 온통 수민와 함께했다. 미국으로 유학 간 수민이를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뿐이었다. 나도 유학가기로 마음을 굳힌 탓에 내목대장의 칼, 아니 아버지의 삶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수민이를 만나기 위해 영어 학원과 화실을 전전하며 보냈다. 그렇다고 유학을 갈 만큼 집안 형편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하던 건설 일이 자꾸만 꼬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가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더구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땅마저도 매형이 은행 담보 설정을 해놓는 모두 바람에 날려버렸다. 집은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급기야 나는 군 입대를 하고 말았다. 서서히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커다란 산이었다. 어쩌면 내 영혼이 안식할 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랬으니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휘청거리게 했다. 아니, 인생의 궤도가 바뀌어버렸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수민과의 미래도 더 이상 꿈꿀 수 없었다. 초라한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릿한 첫사랑은 가슴에 큰 화상을 남긴 채 묻혀만 갔다. 내 첫사랑 수민이, 그녀는 보린을 알기 전까지 늘 내 가슴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임신중독증으로 고생하는 아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수민을 떠올렸으니 오랜 중병을 앓았던 게 분명했다.

 

아, 우라질 그 놈의 첫사랑은 꽤나 아내를 울렸다. 알고 보면 아내도 차가운 여자는 아니었다. 나를 만나자마자 얼마 안돼서 무작정 결혼하겠다며 떼를 썼던 여자였다. 한눈에 나를 알아봤다나, 어쩠다나 그런 말을 했을 정도였다. 시를 읊을 때마다 눈가에 이슬이 촉촉하게 젖어들던 그런 여자였다.

이제 아내는 이런 달콤한 시를 읊어줘도 아무런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사사로운 일에도 잔소리를 퍼붓는 입술은 오래전에 사랑 시를 노래하던 그 입술이 아니었다. 그런 아내가 정말 무서워졌다. 아이를 만나기 위해 아내가 살고 있는 처가에 가면 눈부시게 빛나던 아내의 맑은 눈은 날카로운 가재미눈으로, 진주처럼 하얀 치아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되어 나를 노려본다. 어디까지나 내 탓이었다.
그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아내에게 코 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매불망 가슴에 품고 살았던 수민과 재회한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간간히 소식을 듣긴 했지만 수민이 나를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가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당시 나는 여자에 대해서는 완전초보였다. 아내가 첫 번째 관계한 여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수민과 몇날 며칠 함께 지내고 온 뒤부터 부부관계가 시큰둥해졌다. 먼지 모를 이물질 같은 게 자꾸만 서로를 가로막았다.

아내는 내게 과분한 여자였다. 어디 그뿐이랴. 일가친척 중에는 방귀께나 뀐다는 유명인사가 몇 된다. 지지리 궁상은 나였다. 간당간당 언제 잘릴지 모르는 회사도 아내 소개로 들어와 겨우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아내와의 만남은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수민이가 유학을 떠난 후, 그 어떤 여자도 만나지 않았고 암울함속에서 맞지도 않는 대학을 겨우 다녔다. 4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조건 하나 마음에 들어 선택한 대학이었다. 독신으로 살 작정을 하고 직장을 잡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사실 급할 것이 없었다.
 
수민이 없는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가끔 돈이 생기면 여행을 가거나 카페에 들러 음악을 들으며 허송세월로 보냈다. 우연히 명동에 있는 어느 카페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클래식을 듣기 위해 그 카페를 종종 찾는다고 했다. 작은 눈매, 엷은 홍조 빛 두 볼, 단아한 몸 매무새, 훤칠한 키에 단정한 외모를 갖춘 여자였다. 물론 수민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수민은 어린 나이였는데도,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오므라들 정도로 몸매가 멋졌다. 불룩한 가슴, 엷은 홍조를 띤 얼굴과 부드러운 입술, 그녀는 모든 게 완벽했다. 적어도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그랬다.

어느 날, 어린 아내와 카페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그런데 막 공원으로 들어서자마자, 건달 몇몇이 나타나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여자를 위해 주먹을 휘둘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자 체면에 노골적으로 여자를 희롱하는 놈들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정의의 사도가 되어 녀석들의 얼굴을 묵사발 냈다. 그 자들이 내 주먹에 나가떨어질 정도였으니 초짜들이 분명했다.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던 어린 아내는 감동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생명의 은인, 나는 졸지에 그녀의 은인이 되었다. 나 또한 싫지는 않았다. 여자 앞에서 체면 유지는 했으니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여자는 생명의 은인이 된 나에게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왔다. 실연의 상처가 너무 컸기에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여자는 내 주위에서 혼자 살아가겠으니 상관 말라는 식으로 날마다 얼굴을 드밀었다. 내심 막무가내로 다가오는 그녀를 품고도 싶었다. 너무 오랫동안, 아니 그때까지도 거룩하게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한 상태였다.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을 수민이를 생각하며 자위행위 하는 것도 더 이상 지겨웠다.

아내의 살빛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왜 이렇게까지 벌어졌을까. 어쩌다 아내의 방으로 들어서면, 그 가자미눈이 당장 나가버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잔뜩 주눅이 든 나는 슬그머니 서재에 들어와 차가운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점점 작아지는 아내의 눈, 상흔의 고통 속에 빠져 있던 나를 배려했던 따뜻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의심, 의심만을 발산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아내는 수민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를 나 몰래 만났던 모양이었다. 아들 녀석을 앞에 앉혀두고 날 몰아세웠을 때 알았어야했다. 곧 그녀의 튼튼한 감옥이 지어질 거란 걸 말이다. 어쩌면 수십 년 동안 수민과 소통을 꽤하고 있는 나를 날카로운 촉수로 감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찌어찌 해서 십 수 년이 훨씬 지난 후, 수민이와 연락이 되었고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첫사랑 수민이를 떠올릴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녀와 나는 각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살아갔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자마자 앞 뒤 가리지 않고 군산가는 버스를 타버리고 말았다. 오랜 시간 꿈에서라도 품고 싶었던 여자였지 않던가. 십 수 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 넘었어도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그녀를 밤새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돌아온 수민, 그래도 그녀는 내 첫사랑이지 않던가. 그것만으로도 명분이 섰다. 아, 우라질 나의 첫사랑······. 그녀의 젖가슴은 고물고물한 두 아이의 작은 입술이 핥고 지나간 흔적이 선명한데도 순결하게 느껴졌다. 아니 순결해야만 했다. 그녀는 오직 나의 별이었다. 별, 차라리 내가 그녀의 별이 되고 싶었다. 그대의 가슴에 별이 뜨고, 온밤을 사위다가 가슴 속에 고요히 잠기면 그만이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그리움이 화산 폭발처럼 터져버린 것이다. 팔이 저리도록 그녀를 품에 안았다. 재회의 기쁨에 밤새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 순간 살갗에서 실핏줄이 터지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낯선 남자의 타액이 묻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몸을 샅샅이 핥았다. 아, 정말 그녀의 속살은 참 따뜻했다. 지난날의 고통을 충분히 잊게 했을 정도였다. 수민과의 재회는 간절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뒤범벅이 된 채 짧게 끝이 났다. 아직도 그 날의 느낌이 생생하다.

그날, 수민은 내 몸 위에서 엎드린 채 밤을 보냈다. 곧 다른 남자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인지 충혈 된 그녀의 몸속을 몇 번이고 파고들었다. 아침이 되자, 잘 걷지도 못하는 수민의 등을 다독이며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연거푸 던졌다. 아니, 훗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반듯이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자고 언약하면서 서로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까지 교환했다. 며칠 동안 그녀와 함께 지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서로의 몸이 파김치가 될 무렵, 수민이와 나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고,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수민가 또다시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것은, 3개월 후였다. 수민의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군산에서 그렇게 온몸을 불태우다가 황망하게 그녀를 보낸 후, 그녀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상중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우리는 만났다. 아내에게 엉성하게 둘러댄 거짓말 때문에 또 다시 꼬리가 잡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머리는 광우병에 걸린 소처럼 구멍이 뻥뻥 뚫려버린 모양이었다. 감쪽같이 알리바이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무작정 둘러댄 것이 친구 아버지를 두 번 돌아가시게 만든 것이다. 천성이 느린 탓일 수도 있었다.

서울역에서 다시 만난 수민의 모습은 몹시 초췌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 때문인지 얼굴이 창백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꽉 쥐고 놓지 못했다. 그리고 무작정 그녀를 차에 태우고 내달렸다. 우리는 어느 바닷가가 보이는 모텔에서 온밤을 사르다가 돌아왔다.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더 이상 그녀가 한국에 나오는 일은 없었다.

수민을 만나고 온 후, 몇 날 며칠을 아내에게 취조를 당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평생 취조를 당했던 것처럼 아내는 잠을 재우지 않고 사실을 불라고 했다. 무슨 사실을 불란 말인가. 이미 서막이 내려지고,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남자의 품으로 돌아갔는데도 말이다. 아, 잔인한 고문은 계속되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만든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더 튼튼한 감옥을 짓더니 나를 더욱 옭아맸다. 온 몸을 밧줄로 칭칭 동여맸다. 매일같이 탈출을 시도했다. 그 일이 수 년 동안 반복되었다. 너무 지긋지긋했다. 그런데도 아내는 절대 이혼만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놈이라고. 사실 대단한 놈이래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박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내만이 살아가는 방식이 따로 있었다.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고 별거하면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었다. 그런 아내가 새삼 가여워진다.

결혼하기 전까지 한 번도 여자와 잔 일이 없었다. 맹세컨대 군대 입대 하고서도 깨끗한 몸으로 제대했다. 그게 뭐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성한 몸을 유지하고 싶었다. 우라질, 종당에는 내 동정을 아내에게 고스란히 바쳤다. 돌이켜보면 그 동정 따위를 아내에게 바쳤다고 뭐가 달라졌는가.
‘동정, 그 순결한 동정을 바친 여자가 바로 아내인 것이다.’

아직도 길이 뚫리지 않았다. 아, 보린의 몸이 간절해졌다. 보린은 내 몸피에 숨어 있는 성욕이란 성욕은 모두 흡입해버렸다. 잠시 세상과의 단절을 느낄 수 있는 그녀와의 성애가 눈물겹도록 그리워졌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몸을 의탁할 집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었다. 보린의 몸 속 깊이 들어가기를 갈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보린의 몸속, 그곳은 커다란 항아리가 되어 나를 품어주었다.

소방관 대원 몇 명이 터널 속 갓길로 달려왔다. 곧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모든 차가 일시에 정지 상태에 놓였다. 차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뭔가 큰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들고 차에서 빠져나왔다. 차를 버리고 터널을 걸어 나가야 할 상황까지 벌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수신지역이 아니었다. 충전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난감했다. 아, 불현듯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혹시나 하고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터널 앞 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이마에 맺힌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기 얼마 전이었다. 위암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복수가 차고 폐혈증세를 보였다. 검사 결과 암이 다른 장기로 완전 전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내 손을 붙잡더니 유언을 하기 시작했다.

 

“칼이 울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며칠 전부터 칼의 움직임이 느껴져. 혹시 너에게 화가 미칠까 두렵구나.”
“아버지, 그 칼은 어디에 묻혀 있어요?”
“네가 칼 주인이라면, 먼저 널 알아볼 거다.”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황망히 떠났다. <계속>
 

 이경 약력

대전문인협회 회원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커피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03년, 첫 장편소설 ‘는개’ 출간
장편소설 ‘는개’ 출간.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 소장(2003)
2006년, 대전대학교 대학원 석사 문예창작학과 졸업. 논문 ‘윤후명 소설에 나타난 모티브연구’
2007년,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출간
2012년, 장편소설 ‘탈’출간
2012년, 제4회 김호연재 여성백일장 대상, 여성가족부장관상 수상
현재, 불교공뉴스 사장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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