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이길두 신부

 

부처님 오신 날은 부처가 오신 날이 아니다. 대자대비의 정신이 바로 서는 날이다.
우주와 만물의 인과 원리를 설파하는 날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원리를 깨닫는 날이다. 공空, 해탈解脫 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과 발의 움직임을 보이는 날이다.
종교는 인생의 허탈에서 시작해 해탈에 이르는 여정이다. 무의미에서 탈출하여 무아에 도달하는 긴 여행이다. 공허를 헤어나와 허공으로 들어가는 순례이다.
어쩌면 종교는 자아발견의 씨가 땅에 떨어져 자기초월의 꽃을 피우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에게 방향과 목표를 보게 한다.
삶의 어떤 길을 걸어가든지 늘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가를 생각하라는 부처님 검지의 방향성이다. 이런 뜻에서 부처님 검지의 하늘 향함은 지시언어 이기도 하다.
지시언어의 의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달아나지 말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이 참 슬픔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또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참으로 슬픈 것임을 부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태양과 같은 뜨거움에 접하면서 창공의 푸르름을 마시는 길이라면
불교는 호수처럼 고요해짐으로써 물에 뜬 달 처럼 환해지는 길에 비유할 수 있다.
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 길이 있다.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다.
우리들은 그림자 굽은 것을 한탄만 하고 살아간다.
불행의 원인은 늘 자신에게 있음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통계숫자로 사는게 아니다.
그해 여름, 그해 겨울을 살기에 언제나 그해 여름, 겨울이 가장 춥다.
덥지 않은 여름없고, 춥지 않은 겨울이 없듯이 우리네 인생 또한 수월할 때가 없다.

불교의 가르침은 "해방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인간을 괴롭히는 고苦의 바탕되는 원인이 고정된 자아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에 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바뀌는 무상無常의 진리가 함께 움직이기에 여기에서 시비와 분별, 아귀와 다툼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는 불자들에게 부처님 법法 만이, 무상無常의 진리만이 자아를 부정케 함으로 부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을 자유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임을 알려주는 거룩한 날이다.

현대는 사회가 종교화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가 사회화되고 세속주의화 되어 버리고 있다. 세속적인 것이 신성한 것에 우선하고 사회적인 것이 종교적인 것을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 오늘 부처님 오신 의미는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하며, 왜 존재하는 지를 명확하게 손으로 가르치고 계심을 알아차리라는 말씀이다.
부처님 오신 날 내안의 부처를 보고자 하는 많은 불자들에게 오늘은 어린이 날이 아니고, 어버이 날이 아니고, 부처의 날이며, 나의 날이 되시기를 두손 합장하며 두손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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