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
-酒君*
문효치

가슴속에
매 한 마리 키우네

서늘한 기류 밖
푸른 별 하나 낚꿔챌

매 한 마리
숫돌에 부리를 갈아 날을 세우고
옹이를 찍어 발톱에 힘을 기르네

날마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별 하나 표적을 찾아

눈을 닦고 있는
매 한 마리 자라고 있네

*일본 황실에 매 사냥법을 가르쳐준 백제인.

 

<문효치 시인의 약력>

-전북 군산 출생.
-동국대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66년 한국일보 및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신년대> <진단시> 등 동인 활동
-시집 <무령왕의 나무새> <남내리 엽서> <계백의 칼> 등 10여 권
-산문집 <시가 있는 길> 등 3권
-동국문학상, 펜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옥관문화훈장 등 수상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주성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계간 <미네르바> 발행인 겸 주간
<수상소감>
‘백제’와 나의 시

문효치

오랫동안 ‘백제’를 붙들고 살아왔다. 백제와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6ㆍ25때 월북한 아버지의 문제로 내 젊은 날은 억압과 두려움의 세월이었다. 결국 건강을 잃게 되고 나는 죽음의 위기로 내몰리게 되었다. 늘 죽음을 강하게 의식하며 지냈다. 그런 때에 백제와 만나게 되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무령왕릉의 발굴이라는 사건을 만난 것이다.
발굴된 유물들 앞에서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천오백 년 전의 시간이 현재와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이 통합은 때로는 천둥번개처럼 이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솜이불에 물이 스며들 듯 야금야금 이루어지기도 했다.
나는 이 유물들을 수단으로 삼아 과거(백제)의 세계로 갈 수도 있었고 또 과거의 사람들을 현재로 데려올 수도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나는 죽음이라고 하는 무서운 함정에서 상당 부분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때로는 삶과 죽음 그 너머의 세계를 탐방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 상상 속에서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의 토양 위에서 내 시는 싹틀 수 있었다.
첫 시집에서부터 등장한 백제는 최근의 시집까지 줄기차게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외로운 작업을 부단히 해 왔다.
이러한 나의 ‘백제’에 정지용문학상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 크게 바라는 바는 아니었지만 내심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내 40년 작업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인내와 고통 속에서 외로운 작업을 하는 시인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어쩌면 그들 중의 누군가에게 돌아갈 수도 있었을 이 상이 나에게 덜렁 주어진 것에 미안함도 없지 않다. 여생이 얼마나 남아 있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상상력이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한다. 이것이 그 미안함을 보상할 수 있는 길인 듯하다.
나에게 위안과 용기를 부어준 이 상의 관계 기관과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심사평>

고은
(시인)

옆의 눈길이 멎기에
내 눈길도 괜스레 멎은 나머지
기르는 것
키우는 것이
어찌 절로 자라는 것과
시퍼렇게 남남이랴 싶었소

옆의 눈길에 내 눈길도
날 저물어 따라 갔소

축하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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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지향의 연공(年功)

김남조
(시인)

정지용 문학이 부당한 금지조치에서 풀려나 이 나라 시문학의 큰 산맥으로 위용을 복구하면서 제정했던 ‘정지용문학상’이 이제 23회의 시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시단의 현황에 있어서도 더 좋은 시와 더 풍성하게 시집들을 간행해 옴으로써 이번의 경우만 해도 예심을 거쳐 온 9권의 시집이 어느 하나도 허술히 볼 수 없기에 심사과정이 가파르고 치열했다고 돌이켜보게 된다. 그중에서 문효치 시인의 시집인 『왕인의 수염』에게 수상이 낙점되고 대표시 한 편을 짚어내는 절차에선 「백제시-酒君」으로 결정을 보았다.
문효치 시인은 1966년에 <한국일보>와 <서울신문>의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하여 시단에 나왔으며, 그 후 40여년을 근면ㆍ겸허하게 자신의 문학을 탁마하였고 그 연공으로 그의 작품에는 시단의 신임이 주어져 왔었다. 수상 시집인 『왕인의 수염』은 근작 시들을 모아 엮었으며 치열한 시적 투신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의 평소의 작품은 편하게 읽히고 따뜻한 여운을 가슴속에 남겨 주는 계열이라 할 것이었는데 이번의 수상 시집, 그리고 그중에서도 「백제시-연작」은 깊이 탐색한 역사인식과 통찰력, 언어선택의 묘미, 더하여 그 간결성 등이 장점으로 드러나 수상 결정의 관문을 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리심의 자장(磁場)

강은교
(시인ㆍ제18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자)

문효치 시인의 시 속에는 오래 전에 보던 넓은 하늘이 있습니다. 그 하늘이라는 공간 속에서는 아련한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 ‘소리'와 시인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는 구체를 추상으로 만들 줄 알며 구체를 추상으로 만들 줄 아는 시인입니다.
구체와 추상 사이를 흐르는 팽팽한 긴장, 추상과 구체 사이를 되달리는 팽팽하나 부드러운 그것. 그 둘의 긴장이 그의 시를 떠받치고 있고, 그 긴장으로 하여금 소리들이 만드는 ‘소리심’을 시의 밑바닥에 흐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상작 「백제시-酒君」에서 “매 한 마리”가 “별”을 향해 자라는 “하늘”은 그 점을 깊이 말해줍니다.

문 시인의 시를 시로 만들어 주는 그 자장(磁場)___아무나 그것을 만들 수는 없을 겁니다.

22세기를 향한 문 시인의 행보에 “별 하나” 달려오기를 깊이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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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의 거울, 역사의 귀감 백제의 혼을 찾아서

김재홍
(문학평론가)

여느 심사 때와는 달리 오랜 숙의와 격론, 우여곡절 끝에 문효치 씨의 시 「백제시-酒君」이 올해 제23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문효치 씨는 그간 멸망해 간 백제의 혼, 백제 정신을 찾아서 고군분투해 온 백제의 시인이라고 할 만큼 지속적으로 백제를 노래해 온 시인이다. 이번에 펴낸 신작 시집 『왕인의 수염』은 그 한 성과라 할 만하다.
문 시인이 이번 수상작 「백제시-酒君」은 백제 연작시의 한 편으로서 그가 탐구해 온 백제 혼의 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공력을 기울여 온 작품이라는 뜻이 되겠다.
멸망해 버린 백제 혼, 변두리로 밀려 사라져가는 백제 정신의 부활을 통해서 주변부의 중심부화, 또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가치화를 추구하는 시인의 노력은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백제의 얼굴은 바로 우리 민족사의 실존의 거울이면서 역사의 소중한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주변부의 중심부화가 추구하는 평등의 정신, 사라짐의 가치화를 통한 백제 혼의 부활을 오늘날 우리 민족사가 처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균형추이자 희망의 등불로 연면하게 타오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문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정진과 대성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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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지용회장)
정지용문학상은 한 해 동안 발표된 시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을 가려 포상하는 것이다.
작품성과 함께 낭송하기에도 좋은 시를 선정한다.
올해 본심에는 모두 아홉 편의 작품들이 올라왔다.
모두 좋은 시인들의 빼어난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한 편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두 편으로 압축되었고, 격론이 있었다.
공동 수상까지 거론되었으나 마침내 한 편으로 정리되었다.
수상작 「백제시-酒君」은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문효치 시인의 연작시 「백제시」는 의미 있는 작업인데, 이 가운데 일본 황실에 매 사냥법을 가르쳐준 백제인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시의 울림이 컸다.
대상은 백제 시대 인물이었지만, 그 메시지는 현대의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내면의 볼륨이 큰 작품이다.
주군(酒君)의 매는 문효치의 매가 되면서 우리 모두의 매가 되었고, 마침내 올해의 정지용 문학상이라는 영예를 물어왔다.
수상작은 오래 애송될 것이다.
축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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