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송재건(보은군 수한면 교암리 220)씨

 

 

우리는 바야흐로 다문화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최근 수년 간 국제결혼과 이주노동자들의 급격한 증가로 더욱 빨라지는 다문화시대를 맞으며 국가나 지자체들이 이들에 대한 제도적 수용과 문화 정착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다루며 국가 비전에 접속시킬 것인지 심각한 고민이 요구되는 때다. 새로운 한쌍의 다문화가정을 만들기 위해 베트남 여성과의 소중한 인연으로 인생의 새 출발을 꿈꾸고 있는 마흔네살 노총각의 청각장애인 송재건(42·수한면 교암리 220·보은 금강자동차공업사 근무 ☎544-1111)씨를 만나 그의 인생설계를 들어봤다.〈편집자 주〉

◇결혼중매업체를 통해 만난 천생연분 ‘엔티녹탄’

그는 최근 옥천의 한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만난 베트남 아가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국제결혼의 규약 상 남자는 보통 결혼하려는 국가에 2번 정도는 다녀와야 한다. 이미 한번은 갔다 왔고 나머지 한 번은 날짜는 아직 미정이지만 5월 중으로 잡고 있는 상태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려다 보니 혼기가 많이 늦어졌지요. 부모님들의 걱정이 너무 많았어요. 그러나 제 인생에도 결혼운이 있었는지 베트남 아가씨와의 인연을 갖게 됐어요. 지금 마음이 너무 좋아요. 그러나 장애인으로 살다 보니 비장애인인 아내를 위해 걱정스런 부분도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냥 뭐든 잘해주고 싶고 한국에 오면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고 함께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음에 차오르는 그리움 국제전화·선물로 삭여

결혼가약을 맺은 베트남 아가씨 엔티녹탄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달라 보였다. 뒤늦게 만난 인연인지라 더욱 그렇게 보였다.
그녀의 고향은 호치민시 공항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도시근교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함께 살며 형제로는 1남 1녀가 있다고.
“전 사실 처음엔 외국인과의 결혼보다는 한국의 농아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지만 아가씨들이 콧대가 세고 제가 항상 못나 끌려 다닌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굳은 결심을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베트남엘 갔어요. 여러 아가씨들을 만나보았지만 그렇게 선뜻 저의 마음을 알아주는 처자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가장 나이어린 아가씨가 저의 속뜻을 이해해 주더라구요. 수화로 통역을 했지만 그 아가씨는 이해를 참 잘하고 나중엔 하트모양을 그리면서 마음을 전하더군요. 그때 전 결심이 섰어요. 이 아가씨라고, 그러나 너무 나이차이가 나서 나름으로는 무척 고민도 되더군요.”

◇대전에서 출생해 부모님 따라 보은에 정착

어렸을 때부터 그는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는 청작장애를 안고 대전에서 태어났다. 그가 3세 때 보은으로 이주한 부모님을 따라 보은은 자연스럽게 제2의 고향이 됐다.
“할머니가 제가 어렸을 때 말씀을 해주시더라구요. 어머니가 임신 중 약을 잘못 복용하여 청각에 이상이 생긴 거라는 사실을요. 사실 3남 2녀 중 넷째인 저만 장애를 안고 태어났어요. 다른 형제들은 모두 정상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마음 아프실까봐 절대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어요. 저는 결혼을 하면 자녀는 한 두 명 정도는 갖고 싶어요. 그러나 아내 입장에서는 4명 정도는 낳아야 한다고 이번에 말하더군요. 저는 아내를 위해 아내는 저를 위해 함께 힘을 합해 최선을 다해 나간다면 인생의 어려움은 극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삼산초 입학 서울·충주농아학교거쳐 삼산초 졸업

“삼산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어떻게 청각 장애를 갖고도 일반학교인 삼산초등학교를 졸업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삼산초를 입학해 서울농아학교를 가게 됐고 잘 적응하지 못해 충주농아학교로 다시 옮겼다가 거기서도 역시 적응하기가 어려워 다시 삼산초등학교로 돌아와 졸업을 하게 되었어요. 졸업하고 집에 있다가 대전에서 형이 일하는 곳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 했어요. 자동차에 광을 내는 기술을 배우는 일이었어요.
아마 그때가 20세 정도였을 겁니다. 2년 동안 기술을 배울 동안에 어머니와 누나가 뒷바라지를 하셨지요. 그러다가 기술이 늘어 혼자서 청주에서 ‘월드카 셀프 세차장’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사업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보은공업사에 있는 아버지 친구 분의 소개로 공업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공업사에 청각장애인으로서는 2명이 근무를 하고 있었지요. 이후 청각장애인을 필요로 한다는 권유로 이곳 금강자동차공업사로 오게 되었지요. 사장님이 너무 잘 해주시니 저도 열심히 해야 하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데려올 아내 생각에 일을 못할 정도로 가슴이 뛰고 보고 싶지요.”

◇농촌총각 결혼지원금 혼인신고 후 1년 돼야 지급

금강자동차공업사의 맹주연 대표는 “그는 성격 좋고 마음씨가 착하고 성실하여 눈여겨보고 있는 사람”이라며 “아마도 기술을 잘 배워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에 대한 언어교육에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 베트남의 아내가 무척 보고 싶지요. 빨리 만난 날을 기약하며 저도 하루하루가 재촉이 되지만 열심히 일을 하며 참고 있습니다.
시골농촌 총각에게 지원되는 결혼지원금은 혼인신고를 마치고 1년이 지나야 지급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결혼 축하금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좋지요. 돈을 열심히 모아 가정을 꾸리는데 보탬이 되려고 합니다. 전에 제가 사업을 하다 3000만원 정도를 손해 보는 바람에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대전에 제 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 채가 있어요. 아내를 고생시키지 않으려하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비장애인에게 바라고 싶은 것

“장애를 갖고 일반인들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어려운 점이 많지요. 또한 이 일은 고객과의 접촉이 많은 일이기도 합니다. 필담이나 입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구화도 가능하므로 천천히 간단명료하게 정확하게 설명해 주시면 입모양을 보고 알 수 있지요. 발성연습도 하고 있어요. 불과 얼마 안 있으면 한국에 올 아내가 오면 제 인생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느낍니다.
베트남에서 결혼하고 이렇게 다시 혼자 돌아와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으려니 더욱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매일 매일 하는 일이 방해될 정도라면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베트남 아가씨와의 필연적 인연에 새로운 인생의 희망을 품고 들리지 않는 마음의 세계까지도 마음껏 펼쳐보이는 그의 정서가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성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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