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현(KCRP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불교공뉴스-종교연합] 프란치스코현상!
그렇다 그것은 프란치스코현상이라 부름직하다고 본다.
그는 정부의 수반이기도 하지만 한 종교의 수장이기도 한 지구상에 몇 없는 특별한 사람이다.

물론, 불교의 달라이라마가 있으나 프란치스코와 달리 그는 현재 망명정부의 수반이고, 한 교파의 수장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그런 크기와 공식 직함을 따라 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비교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두 분 다 훌륭하기에. 다만, 여기서는 얼마 전 우리나라 한국을 다녀가신 프란치스코교황을 생각하고자 하는 자리이다.

정부가 초청자라느니 광화문이라는 전 민족의 상징거리에서 한 종교의 특별행사를 했다느니 하는 말은 다른 자리에서 살피는 것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이 자리에서는 마땅하지 않다.
 
교황이 우리나라에 와서 100시간을 머무는 동안 우리 한국인들은 그야말로 100가지 귀하고 거룩한 경험을 했다. 하나하나 말로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지만 그 마음만큼은 종교를 가진 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그와 같은 가톨릭인이거나 나처럼 불교 등 다른 종교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뜨거운 사랑, 평온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100시간 동안의 프란치스코현상을 겪었다.

그처럼 바쁜 이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몸으로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는 우리 한국인과 중국인들에게 소통의 메시지를 보내면서부터 그는 우리에게 따뜻함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시복미사 등을 집전하는 가톨릭의 행사는 행사대로 그 뜻이 충분이 펼쳐지고 이 땅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좋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문 밖의 사람들은 그의 신학적 언행보다도 사람으로서의 언행에 시선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알려진 것처럼 공식 행사장이든, 비공식 자리이든 그 어느 곳을 가다가도 어린이를 만나면 그와 눈을 마주치고 ,뺨을 부벼 대고, 입을 맞추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을 끊임없이 하였다.
 
집중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는 그의 손가락을 물려주며 하나됨을 맛보고 보는 이들에게 평화를 선물하였다. 그것은 마치 붓다의 마지막 설법을 담은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는 어린아이행(嬰兒行)을 그대로 보는 듯하여

제 논에 물을 대는 맛을 본 것이라 하여도 어쩔 수 없는 기쁨을 나에게도 주었다.

또 우리 사회의 커다란 아픔이었고 아픔이며 아직 해결하지 못한 슬픔이기도 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그들과 공감하며 그들이 지고 걸었던 십자가를 교황청까지 가지고 가서 모시겠다고 한 것은 정말 감동이었다.

더구나 그는 신부로서, 교황으로서 가치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약자의 편에 기우는 것이 설사 중립 가치를 어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다짐은 우리를 울리게 하였다.

어쩌면 현실적인 해법에서는 그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들이 모여서 해결을 하는 데는 심리가 아닌 물리화학적 중립이 필요할 지도 모르지만 성직자로서 더 많이 아프고 약한 이에게 기우는 것은 필요한 덕목이라고 본다.

어려운 곳이 많이 있지만 자본주의의 폐해로 인해 덜 가지게 된 이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육체, 정신적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빛을 쬐어주고, 그들의 희생과 어려움을 딛고 풍요로운 삶을 넘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책임과 지혜의 빛을 쏘여주었다.

이 세상은 절대로 홀로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에 함께 누리지 않으면 그 복이 오래 가지 않으며, 함께 누려야만 그 복이 오래 가기 때문임을 가르쳐주었다.
 
이 땅의 지도자 특히 정치, 경제, 종교의 지도자들이 남보다 먼저 바른 견해를 지니고 남들에게 권위적으로 지도하지 않고 제대로 된 행동강령을 스스로 실천하며 주위에 나눌 때 그 복이 이웃에게도 나눠지고 온 누리에 그득하게 되면 지도자에게 그 복이 모두 돌아간다는 것을 깨우치고 갔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뿌리에 자리 잡은 불신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반만년 이상을 한 뿌리를 유지하며 지내서 언제라도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가능성을 꿈꾸는 큰 믿음을 가꿔가도록 일깨우는 일과 여러 종교들이 ‘틀린 종교’도, ‘다른 종교’도 아닌 ‘이웃 종교’라는 세계 유일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국에서 특별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함을 되새기는 일도 하시고 가셨지만 조금 더...하는 아쉬움은 희망으로 남겨놓기로 하자.

살아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척박한 사막 땅에도 단비가 내리면 기화요초가 피어나고 아름다운 벌과 나비 새들이 저축하지 않는 먹거리, 길쌈하지 않은 의복들을 뽐내지 않고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가 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살맛나는 땅이 되도록 이 땅의 구성원 모두에게 지혜의 빛을 나누는 것은 프란치스코를 보낸 우리의 몫이다. 100시간 동안만 겪은 프란치스코현상이 아니라 더 오랜 기간동안 이어질 가치로 승화시키는 것 말이다.

가톨릭과 이웃종교 그리고 우리사회가 머리와 가슴을 열어야 한다. 슬기로워야 참으로 사랑하고, 참되게 사랑해야 슬기롭다는 것은 바이블(성경)에서도 수트라(불경)에서도 일치하는 가르침이다. 그런 뜻에서 이미 다녀가셨지만 이제사 나는 프란치스코교황님을 뵙는다(I see You,Pope Prancisco). 늘 건강하고 슬기롭고 사랑스러우시기를 축원드린다.

이글은 종교와 평화 87호에도 게제 되었습니다.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열린선원장. KCRP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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